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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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눈께 |  2025-06-15 02:29:33 추천 비추 신고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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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무척이나 습하고 덥던, 장마들 중 하루였다. 습기가 낀 창문은 세상의 형체를 흐릿하게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 흐릿함 속에서 한참이나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그대로 비를 맞고 서 있던 너. 버스 정류장 옆 낡은 편의점 앞, 하얀 셔츠가 피부에 달라붙은 채, 눈을 감고 있던 그 순간은 벙말 내게는 큰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 날 이후로, 여름은 내게 단지 더운 계절이 아니라, 시간을 멈추는 계절이 되었다. 나는 그날의 냄새를 기억한다. 젖은 흙, 콘크리트 벽에서 번져나온 곰팡이 냄새, 그리고 네가 꺼내 마시던 편의점 캔커피에서 풍기던 단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장면이 되어, 내 여름마다 되풀이되었다. 마치 비오는 날의 습도처럼, 언제나 피할 수 없이 스며들어왔다. 너는 그날 웃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너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 여백 안에 수많은 의미를 남겼다. 우리는 오래 걷지 않았고,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오후, 뺨을 타고 흐르는 빗물과 눈꺼풀 위에 얹힌 습기, 그리고 조금은 달아오른 감정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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