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약 스포) <인어 공주 (202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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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킷 |  2023-05-27 11:18:15 추천 비추 신고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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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가 영화를 만든다는 기쁨이 아니면, 영화를 만드는데 따르는 고통을 표현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영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by 프랑수아 트뤼포

[한 줄 평 : 앙상하게 마른 산호에 입힌 가련한 금박칠]

1.CG와 배경의 문제점

-해물탕 파티니 어쩌니 하는 건 사실이긴 합니다
조연 캐릭터들을 너무 실사화 하다보니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던 표정 연기가 사라졌네요
해당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잘 하긴 했지만, 영화를 보는데 눈을 감고 소리만 들을 순 없는 노릇이죠

그리고 배경이 어두운 부분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특히 에리얼이 난파선에서 구한 인간의 물건들을 따로 모아 놓은 장소의 경우 이게 단순히 '어둡기만 해서' 문제에요

에리얼의 비밀 장소이니만큼 바다 속으로 들어온 햇빛을 금속성 물건들이 빛을 반사 시켜서 반짝이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면, '바다 속에 펼쳐진 은하수' 느낌으로 연출했다면 '어둡지만 신비로운 바다' 느낌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딱 하나 CG가 좋았던 건 이 영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Under the sea 파트였네요
해양 생물들의 연주 대신 형형색색의 생물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은 '이거 뮤지컬 영화야' 라며 정체성을 말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어둡다는 느낌이 그나마 분위기를 잘 살리는 파트는 바로 에리얼이 울슐라의 둥지로 들어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울슐라의 알 수 없는 속내를 표현한 건 좋았지만, 확실히 어린 아이들이 보기엔 너무 공포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긴 해요


2.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

-본격적인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에리얼과 에릭은 각각 서로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끊임없이 드러냅니다
에릭은 끊임없이 배가 난파되는 상황에서도 앞장서서 무역선에 몸을 실으며 에리얼은 말 할 것도 없죠

그리고 에릭의 어머니인 왕비는 왕비 나름대로 '바다는 위험하다' 라며 그를 말리고
트라이톤 역시 에리얼에게 '인간들은 모두 난폭하다' 라며 에리얼에게 바다 바깥으로 나가는 걸 만류합니다

이런 대립구도는 에리얼과 에릭이라는 신세대 / 왕비와 트라이톤이라는 구세대를 상징해요

문제는 이 두 구세대가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왕비는 '바다의 신이 배를 난파시킨다' 라고 말하고, 트라이톤은 '인간들이 너의 어머니를 죽였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요, 좋다 이거에요. 그렇다면 이 편견을 타파할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 오는데

문제는 이걸 신세대를 상징하는 에리얼과 에릭이 울슐라를 무찌름으로서 해결합니다
울슐라가 그런 편견을 상징하는 캐릭터면 문제가 없겠죠

울슐라는 트라이톤에게 원한이 있는 것으로 등장하는데, 문제는 그 원한이 무엇인지 영화에선 그 어떠한 언급도 없으며, 힌트조차 주지 않아요

애초에 이 부분에서 각본에 각색이 필요한데, 각색 없이 원작 그대로 가니 여기서부터 황당해집니다

울슐라 역의 멜리사 맥카시가 연기를 원작 초월 급으로 잘 한 것과는 별개로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빌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아니, 애초에 왜 울슐라가 빌런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원작에선 이유라도 있었지...이 영화에선 그녀가 왜 빌런인지 알려주지 않아요

울슐라와 트라이톤의 관계에 대해선 각색을 해놓고 정작 중요한 부분을 빼버리니 관객 입장에선 '이게 뭐야?' 할 뿐입니다

인간 왕국의 총리인 그림스비의 경우, 에릭이 물에 빠졌다가 구조 되자 에릭에게 회복이 우선이라 말하는 왕비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지만

이후 에릭이 에리얼과 성 밖으로 몰래 마차를 타고 나갈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림스비가 이런 식의 행동을 바꾸는 계기 역시 설명해주지 않아요

심지어 에리얼은 극 중에서 말도 못 하고, 신분도 불분명한 상황입니다
그런 사람을 왕자와 단 둘이 붙여놓는다? 이게 핍진성이 있기는 한 장면일까요?

트라이톤의 경우, 이 영화에서 지극히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가 딸을 걱정해서 그렇다는 건 알지만 단순히 거기서 그칠 뿐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에리얼을 뒤에서 밀어주지 못 하고 그저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캐릭터에 그칠 뿐이에요


3.주연 배우의 연기와 주체성

-저는 할리 베일리의 인종과 외모에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몰입이 안된다, 어쩐다 하는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이건 연기력에서 나오는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잭 블랙이나 유해진 같은 배우들이 외모가 뛰어난 건아니지만, 자신만의 감칠맛 나는 연기로 스크린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걸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배우라는 직업에겐 무엇보다 연기력이 중요합니다. 그 연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면 그것은 더 나아가 그 배우의 '매력'이 될 수 있구요

확실히 노래는 잘 합니다. 본업이 가수이니 그럴 만 하죠 근데 이건 영화잖아요. 콘서트 실황이 아니구요

섬세한 감정 연기에서 할리 베일리의 연기는 심각하게 경직되어 있습니다
특히 목소리를 잃고 인간 세상에 들어온 이후부터 이 문제는 두드러지고 있어요

대사 없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배우의 연기력을 요하는 부분이지만 그녀의 연기력이 과연 이런 굵직한 프로젝트의 주연을 꿰찰 수 있는 수준인가? 에선 상당한 의문이 드네요

그리고 분명 디즈니는 주체적인 캐릭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래요, 그나마 에리얼이 주체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에릭이 바다에서 모은 물건들에 대한 용도를 에리얼이 알려주는 부분이요
하지만 이 부분을 완벽하게 '에리얼의 주체적인 모습' 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 부분은 에릭과 에리얼이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가까워지는 모습' 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에요
이런 연출을 했던 영화가 바로 박찬욱 감독님의 <헤어질 결심> 입니다

하지만 비교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에요

<헤어질 결심>의 경우 두 사람의 감정선은 안개처럼 흐릿하지만 산처럼 우직하며 바다처럼 깊게 그 자리에 아주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걸 집요할 정도로 보여주며 각인시키니까요

설마 에리얼이 마차를 몰며 난장판을 만들고, 시장에서 벌이는 행동들에 대해서 에릭이 뒷수습을 하는 걸 주체적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
진심으로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게다가 에리얼이라는 캐릭터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녀는 발이 없어서 인간 세상에서 걸어다닐 수 없다는 신체적 한계와 아버지라는 이름의 울타리가 막아서고 있다는 환경적 한계를 동시에 지닌 캐릭터에요

정말로 주체적인 공주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에리얼이 스스로 이 족쇄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각색했어야만 합니다

물론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그대로 입니다

이쯤되면 롭 마셜 감독에게 묻고 싶어요
본인 스스로 '할리 베일리에게서 특별한 것을 보았다' 라는 것이 캐스팅한 이유라고 밝혔는데 대체 그 특별한 것이 뭔지를 말입니다

배우의 역량을 끌어내는 것이 감독의 역할입니다
그걸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롭 마셜 감독의 능력이 그 정도 밖엔 안된다는 것이겠죠

반대로, 할리 베일리의 한계가 여기까지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입니다
그녀 스스로 영화의 주연을 꿰찰 능력이 없다는 걸 증명한 셈이니까요


4.메세지를 원하면 우체국에서 전보를 보내라.그런데 메세지 없는 전보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디즈니는 여태까지 자신들의 올바름을 설파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로 인한 잡음이 끊임없이 발생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편견으로 들어찬 구세대와 편견 없는 신세대가 서로 충돌합니다

그런데 디즈니는 이 갈등에 대한 해결법을 전혀 제시하지 못 하고 있어요
특히 에릭이 살고 있는 이 왕국 자체가 디즈니가 원하는 하나의 이상향으로 보입니다

왕비는 흑인이지만 백인 고아인 에릭을 입양했고, 이 때문인지 몰라도 에릭 역시 왕자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편견 없이 뱃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합니다

마치 '이걸 봐, 이게 바로 우리들의 이상향이야' 라고 말하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보여줄 영화의 방향성이 틀렸어요

디즈니가 정말로 올바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완성된 이상향' 이 아니라 '이상향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과정을 보여줬어야 합니다

애초에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에서 문제가 발생해요
원작부터가 이런 것과는 동떨어진 스토리인데, 각색이 필요한 부분은 그대로 놔두고 넣어야 할 부분은 넣지 않음으로서 정작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각본 사이에 어마어마한 괴리가 발생합니다

대체 디즈니는 뭘 하고 싶은 걸까요?
올바름에 대한 설파를 하고 싶은 걸까요? 아니면 올바름을 가장한 장사질인가요?

감독이 말한 주연 배우의 특별함? 디즈니가 말한 주체적인 공주 캐릭터?
애초에 그들이 말한 것과 영화의 내용물이 다르니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이 되어버렸네요

그런데 심지어 원작을 좋아하는 팬들의 추억까지 인질로 삼고 있었으니 이게 '사기'가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하나요?

지금의 디즈니는 그저 잘나가던 옛날을 추억하며 버럭 버럭 소리만 지르는 뒷방 늙은이 같아 보일 뿐입니다

영화를 좀 보고 '음?' 했던 장면이 바로 문제의 포크 빗질 장면인데 드레드록 헤어스타일의 흑인이 포크로 빗질하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백인들이라...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5.마치며

-세상에는 누군가 만들어낸 수 많은 꿈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 꿈을 '영화' 라고 불러요

하지만 이 영화는 누군가에겐 악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출처 : 글쓴이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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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장원영
이거보고 우는 애들도 많다고 하더라구여..ㅠ
1 0 추천 비추 신고 대댓글 2023-05-27 16:21:17
테킷
아이들 입장에서 무섭다고 느낄 만한 부분이 있긴 있더라구요 ㅠ
3 0 추천 비추 신고 2023-05-27 20:36:06
햇살아래서서
이런 수준높은 글을 보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3 0 추천 비추 신고 대댓글 2023-05-27 18:07:09
테킷
과분한 칭찬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4 0 추천 비추 신고 2023-05-27 20: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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